[이달의 아이들:책] 할매! 우리 뽀끄땡스 한번 출까?

29_날마다(아이들 93)

 

글_유은실(동화작가)

 

“엄마도 여자고 자기 인생이 있는 거다.”
그 말을 누구에게 처음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린 나는 마음이 뿌얘졌다. 우리 엄마는 ‘여자’로도 ‘자기 인생’으로도 행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엄마가 날개옷을 입고 자기 인생이라는 데로 가버릴까봐 두려웠다. 내 존재가 짐덩어리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날마다 뽀끄땡쓰>의 주인공 들레와 어린 나는 거기서 처음 만났다. 들레는 ‘엄마에게 인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아이다.

‘엄마의 인생’은 들레가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학교에 가면서도 들레는 엄마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22쪽

들레는 12살이다. 아빠는 태풍에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뭍에 나가 식당에서 일한다. 밤섬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뒤늦게 엄마 재혼 소식을 듣게 된 들레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자칫 상투적으로 빠질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작가 오채의 저력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는 성급한 수용을 강요하지 않는다. 들레에게 헤맬 시간을 준다. 엄마를 미워할 거라고,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털어놓게 내버려둔다.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따라, 흔들리며 자라나는 들레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픔을 어쩌지 못해 사방으로 가시를 뻗는 아이를 친구 진우와 보라는 내치지 않는다. 좋은 어른들이 꼭 안아준다. 가시 돋친 이를 안아주는 사람은 찔릴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 말고는 가시를 무디게 할 길이 없다는 걸 인물들은 잘 알고 있다. 갑판장, 선생님, 해군 대장, 할머니…… 모두들 사랑이 뭔지 아는, 근사한 어른이다. 그중 최고는 들레 할머니다.

“뭐 허는 거여? 얼렁 춰야제. 애린 것이 머릿속에 너무 많이 담고 있어도 못 쓰는 법이여. 이놈 추고 우리 싹 잊어버리자. 오늘 걱정은 오늘로 족한 거여.”-59쪽
“니가 어리다고 해도 다 어린 만큼의 뻑뻑함이 있을 것인디. 그럴 때 저 조각하늘마냥 숨 쉴 틈을 찾아서 숨을 쉬어야제. 그라고 오늘 걱정은 오늘만 허고 말이다.”-165쪽

뽀끄땡스 한 판으로 ‘뻑뻑함’을 날리는 이 근사한 할머니 덕에 이야기는 질척질척해질 틈이 없다. 깊은 주름만큼 마음 굽이굽이 지혜와 따뜻한 골짜기를 품은 할머니는 매력적인 인물이자 울림이 큰 배경이다. 할머니가 곧 바다이고 섬인 것 같다.
『날마다 뽀끄땡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바다 건너 다른 세상을 꿈꾸는 아이’였다는 작가의 고향이 궁금해졌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안마도’를 쳤다. 안마도는 서해 바다 끝자락에 있다. 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그 섬에 가고 싶다. 맑은 오카리나 소리가 들리고, 칡을 캐내느라 파낸 커다란 동굴 아래 아이들의 비밀 본부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햇볕 따뜻한 어느 언덕에서 포크댄스를 추고 있는 들레와 할머니를 만날 것만 같다.

오승민 그림 | 오채 지음
카테고리 문지아이들 | 출간일 2008년 5월 16일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72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32018638
수상/추천 마해송문학상 외 6건

유은실

유은실은 1974년 서울 사당동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서울독산초등학교’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산동 조그만 연립주택으로 이사해, 스무 살까지 그 집에 살았다. 관절염이 심해진 아버지는 1980년에 사표를 내고, 이듬해 아버지가 없는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