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쿠퍼 글, 정회성 옮김『그림자의 왕』
글_이경혜(아동문학가)
이 책을 읽는데 예전에 본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제목도, 줄거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단 한 장면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 껄렁껄렁한 인물이 있었다. 주인공도 아니고, 매력 있는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상도 안 좋으며, 척 봐도 보잘것없는 남자였다. 그 남자가 어느 날 당구를 치고 있다. 여전히 껄렁껄렁하게 굴며, 시답잖은 말이나 던져 대면서. 그런데 누군가 연극 얘기를 꺼냈던가. 갑자기 그 남자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전혀 다른 목소리로 그 연극의 대사를 읊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의 어떤 왕의 대사였다. 내가 놀란 것은 그 껄렁껄렁한 남자가 그 순간 단숨에 위엄이 넘치는 군주로 눈부시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때 진정한 배우란 어떤 존재인지를 눈앞에서 깨달았다. 진정한 배우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한순간에 우리를 시공간이 다른 세상으로 데려갈 수도 있는 존재였다. 진정한 배우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런 배우들이 만드는 진정한 연극이란 정말 위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림자의 왕』은 그런 연극의 매력에서 출발한다. 과거로 날아가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등의 사건은 사실 그 연극의 매력에서 뻗어 나온 가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부모를 아프게 잃은 소년 냇에게, 고모는 연극을 하라고 권유한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고모는 냇이 ‘분리된 작은 세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옳았다. 냇은 그 ‘분리된 작은 세계’에 곧장 빠져든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준비하는 사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400년 전 그 작품이 처음 공연되는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냇’은 자신과 같은 역할을 맡았던 또 다른 ‘냇’과 바꿔진 채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한다. 400년 전의 냇은 21세기로 와서 페스트 환자로 병원에서 의식을 잃고 헤매고, 21세기의 냇은 그를 대신해 그곳에서 생생한 공연을 한다. 거기다 세상에!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를 직접 만나 그와 공연을 함께하며 심지어는 그에게서 부모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기까지 한다. 아, 이 부분은 정말 환상적이다. 연극을 하는 아이에게 셰익스피어를 만난다는 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와 짝이 되는 일 이상의 황홀한 일이다 (내가 과거로 가서 허난설헌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 친구가 된다면? 오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 400년 전에 몸에 발랐던 안료 자국이 남아 있고, 냇이 만나고 온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로 존재하고, 냇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한 셰익스피어의 약속이 현실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점 등은 독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안을 준다. 꿈이 사라진 자리의 씁쓸한 허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뿐인가. 냇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믿어 주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 마지막 행운은 시간여행을 한 다른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좀체 누리지 못한 행운이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연극이라는 익숙지 않은 ‘분리된 세계’의 매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덤으로 시간여행까지 쏠쏠하게! 이만하면 우리 삶의 지극히 적은 부분을 떼어내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어렵게 말했다. 간단히 다시 말하면 이렇다. “읽을 만하다,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