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마법사 달벤』로이드 알렉산더 지음
글_김서정(아동문학평론가)
정말 좋은 책이 그 가치에 값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도 그렇다. 판타지가 무엇인지 그 특성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인생과 인간에 대한 보석 같은 통찰로 빛나는 책. 그러면서도 힘이 잔뜩 들어 있거나 거품으로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도 높고 겸손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재미로 채워져 있는 책. 요즘처럼 판타지가 각광받는 때에 이 멋진 판타지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다.
이 책은 로이드 알렉산더의 작품이다. 영미권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프리데인 연대기’로 여러 상도 받은 유명 작가임에도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와 『젠 왕자의 모험』 정도만 나와 있을 뿐이다. 해리 포터 이후 몇몇 장대한 하이 판타지가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나니아 연대기 이외에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 때문에 프리데인 연대기는 아직 번역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은 그 프리데인 연대기의 프리퀄 성격을 띤 단편 모음집이지만, 작가의 말대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기도 하려니와, 말했다시피 인생과 인간에 대한 보석 같은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모든 지혜가 들어 있는 마법의 책을 읽은 대가로 하루아침에 젊은이에서 파파 할아버지로 변해 버린 달벤. 그가 비통함 속에서 마지막으로 건진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달벤은 비록 인간의 삶이 짧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삶 하나하나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책 맨 끝에 이르렀을 때, 달벤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식의 끝에서 지혜는 시작된다. 그리고 지혜의 끝에는 슬픔이 아니라 희망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긴 인생을 마술적으로 압축해 보여 주면서 내려주는 이 결론은 알 수 없는 힘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시공을 알 수 없는 판타지 속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깨우침을 준다. 난쟁이에게서 마법의 돌을 받아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빈 농부는 곧 그 소원이 얼마나 재앙인지를 알게 된다. 씨앗은 싹트지 않고, 암소는 새끼를 낳지 않고, 병아리들은 알을 깨고 나오지 않고, 아이의 이도 나지 않는 것이다. 절망하는 이 농부의 모습에 과도한 성형과 운동으로 젊음을 지키려 안간힘 쓰는 현대인의 모습이 겹친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사를 고르는 자리에서 온갖 놀랍고 무시무시하고 휘황찬란한 마법을 물리친 것이 한 평범한 젊은이의 “요란스럽지 않게 그저 조용히 물과 숲, 바다와 하늘,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에 대해, 그리고 한 베틀에서 짠 실처럼 서로서로 촘촘히 엮여 있는 모든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풀어 놓은 이야기였다는 대목에서는 묘한 뿌듯함과 기쁨이 차오른다.
이 책의 여덟 편 이야기들이 한결 같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다. 죽음의 제왕도 두려워 달아나게 만드는 힘, 생명. 판타지는 그것을 어떻게 얻고 지키는지를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 프리데인 연대기를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