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리 도허티 『우리들의 비밀 놀이터』
글_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낙원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풍경이며 얼마만큼 아름다운가는 중요하지 않다. 낙원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낙원이다. 낙원의 이미지는 대체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면 주위에 두지 말라’고 했던 윌리엄 모리스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밑그림은 어린 시절 조랑말을 타고 마음껏 헤맸던 에핑Epping 숲이다.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현장에 가 보진 못했지만, 윌리엄 모리스가 남긴 디자인과 생각을 통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여름 그 숲 한쪽이 폭염으로 불탔다지만 모리스의 생각과 디자인은 대대세세 흠 없이 영원하리.) 그림책 낙원-그림책도시를 꿈꾸며 이런저런 주춧돌을 다듬는 과정에서 윌리엄 모리스와 그의 낙원을 만나고, 온통 그 생각에 빠져 지내는 이즈음 벌리 도허티와 로빈 벨 코필드가 그려낸 낙원을 만났다.
낯선 개 피에르를 기르게 되어 기쁨에 찬 아이들, 나와 샌디와 리처드 셋은 새로운 걱정과 갈망에 휩싸인다. 아이들로서는 액수가 만만찮은 피에르의 애완견 등록 비용 마련하기와 모두 함께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비밀 장소 찾기가 그것이다. ‘요정이 있어서 이런 걸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나무판자를 모아 우리 힘으로 헛간을 멋지게 꾸며 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우선 사탕 사먹을 돈을 양말에 모으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학교에서 돌아온 샌디가 말하길 요정 아줌마를 만났는데 피에르를 데리고 놀 수 있는 들판 한군데를 찾아 주더란다. 나와 리처드와 피에르는 샌디를 따라간다. 좁은 길을 지나 울타리를 타넘고 몇 번이나 둔덕을 뛰어넘어 또 새로운 울타리 하나를 타넘었을 때 세 아이들은 한마음으로 외친다. 피에르도 함께! “여기가 바로 우리들의 비밀 놀이터야.”
모두 일곱 단락의 이야기가 풍성한 수채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이 근사한 그림동화 『우리들의 비밀 놀이터』(원제 Our field)에서도 특히 이 장면은 양쪽으로 활짝 펼쳐 세워 둔 채 넋 놓고 바라보기에 좋다. 벌리 도허티는 로빈벨 코필드가 그려낸 이 낙원의 풍경을 보고 어떻게 감탄했을까? 궁금하고 궁금하다. ‘그림동화’(전형적인 그림책에 비해 글이 많고 그림이 적다)와 ‘그림책’ 가르기에 대해 나는 옹졸하도록 까다로운 편이지만, 이 책은 그림책 서가에 두기로 마음먹는다.
완벽히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 줄거리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세상 모든 아이들 앞에, 예전에 아이였던 세상 모든 어른들 앞에, 이 그림동화가 활짝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렇듯 그득히 펼쳐진 들판과 그 들판의 꽃과 풀과 바람과 구름과 개울 물소리에 빠져들기를, 팔과 다리를 마음껏 움직이며 뛰어놀기를, 이끼를 만지며 풀꽃으로 꽃다발을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