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잘 지내? -『나, 단테, 그리고 백만 달러』

글_기획팀 S

동문학팀 L이 『나, 단테, 그리고 백만 달러』에 대한 서평을 지나가는 말로 부탁했을 때 나는 오히려 진지했다. 동화를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이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린이 책이므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어린이 책이므로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멋대로의 생각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얕은 생각에 대한 반성을 해야 했다. 생각의 의자에 앉아 엄마의 용서를 간절히 바라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어른이고,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 몰라, 싫어!라고 말하고 싶다. 손에 진흙을 묻히고 입고 있는 옷을 더럽히고 싶다. 아침에 많이 자고, 저녁에는 엄마 몰래 TV 보고 싶다.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고 싶다. 사이다에 밥 말아 먹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고, 할 건 해야 한다. 아, 정말로 그냥 진짜로 진실로 기필코 어린이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단테를 만날 수 있을까? 단테는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나.

 

쓰레기장에서
잘나가는 은행원이자 이사로 승진에 성공한 ‘헬게’는 누명을 쓰고 도망간다. 쓰레기장으로. 그곳에서 생쥐 ‘단테’를 만나고, 괴물을 피해 단테의 집에 몸을 숨긴다. 헬게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쥐와 함께 살아야 한다. 헬게는 이제 더러워질 것이고, 헬게는 맨발로 푹푹 빠지는 쓰레기 위를 다녀야 하며, 누가 쓰다 버린 매트리스 위에서 자야 한다. 헬게에게는 경찰에게 잡히는 것 이상의 형벌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깨끗이 해야 하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깨끗한 몸에 사회적 능력을 담아야 한다. 만약에 당신이 은행의 간부라면, “가난한 사람이 한 푼 두 푼 맡긴 돈을 은행을 위해 큰돈으로 불리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우러러볼 것이고, 돈도 더 벌 수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보통 말한다. 헬게는 성공의 문턱에서 드라마틱하게 자빠져 쓰레기장까지 추락한다. 거기에 생쥐가 있다.

씹는담배 빨리 먹기를
“차 한잔 마실래?” 쓰레기 속에 사는 생쥐 ‘단테’는 솔직하고 여유가 있다. 그는 쓰레기를 쓰레기라 말하지 않는다. ‘물건’이라고 칭한다. 그에게 쓰레기 더미는 쓸 만한 물건이 가득 찬 보물 창고 같은 공간이다. 그는 그의 물건 속에서 충분히 행복하다. 그곳에서 구한 물건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전당포에 간다) 그곳에서 구한 금을 모아서 금니를 하려고 한다(그는 이를 닦지 않는다). 그리고 씹는담배 빨리 먹기 내기를 한다.
단테는 겁쟁이가 아니다. 좀팽이도 아니다. 우리의 헬게는 약간 그런 기미가 있는 것 같고, 나는 완전 그렇다. 맨발로 식탁에 올라간 단테에게 헬게는 박테리아를 운운하며 질겁한다. 우리는 “그런 쪼그만 벌레도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산다. 그뿐인가.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다 살로 간다. 한약을 먹을 땐 밀가루 음식을 멀리 해야 한다. 학교 진도를 미리 배워야 한다. 친구들이 입는 점퍼는 나도 입어야 한다. 다른 엄마들이 아는 그룹 과외 소식은 나도 알아야 한다. 헬게는 겁쟁이란 말에 발끈해서 씹는담배를 한꺼번에 들이킨다. 그리고 잠든다. “귀여운 아기”처럼.

백만 달러 따위야
헬게의 삶은 조금씩 바뀐다. 삶이 바뀐 후의 지점에서 삶의 처음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쓰레기장에서 헬게는 새로운 삶으로 진입한다. 진입의 과정에서 누명을 벗고, 쓰레기장에서 벗어난다. 처음 도둑으로 몰릴 때 자신을 전혀 믿어주지 않던 동료들이 찾아온다. 헬게는 그것을 가짜라고 느낀다. 가짜보다 진짜를 원한다. 단테의 작고 못생긴 눈에서 ‘진짜’를 발견한다.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고, 만족할 줄 알며, 그래서 얻는 행복.
진범은 남태평양에 가고 싶어 한다. 우리도 대부분 그렇다. 서울의 매캐한 공기, 싸늘한 바람,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남태평양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에게 백만 달러가 있다면, 그곳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이 있다면,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텐데.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헬게는 깨닫는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늦은 저녁 편안히 앉아 차 한잔을 마시는 일”이었다. 생쥐(친구)와 함께. 어라? 남태평양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잖아. 친구와 함께 귀가 어두워져 서로 악을 쓰며 대화를 나눌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말이다. 삶이 바뀌기 전의 지점에서 삶의 끝을 미루어 짐작하니, 역시 표정관리가 안 된다. 이럴 땐 오늘 저녁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다. 차를 마실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물건을 주위에 두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앞에 두고. 백만 달러 덕분에 ‘헬게’는 친구 ‘단테’를 얻는다.

제 글을 슬금슬금 마쳐야 한다. 우선 담당 편집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어릴 때도 잘 읽지 않았던 동화를 서른둘에 읽게 해주어서 무척 고마워요. 나의 ‘뵈르크룬드’는 동화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어떤 강력한 예감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thank you 중국어 谢谢, 일본어로 ありがとう. 다음으로 독자들에게 당부를 드리자면 이렇다. “안녕! 이 책을 펼쳐 드는 순간 여러분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무시무시한 모험을 각오해야 해요.” 그래요. 솔직히 저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지는 않았지만, 대신 심장은 울렸어요. 어른이 읽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안부를 묻자면 이렇다.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에게 권장하니까(20년 전에 그 나이였지만) 아직 단테를 보고 싶어 해도 되는 거야. 우리 만나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단테! 어딨니? 

 

이야기의 맛을 더하는 울프 K.의 그림. 보라. 단테의 사랑스러운 두 눈을!

프리다 닐손 지음| 울프 K. 그림|박종대 옮김
카테고리 문지아이들 | 출간일 2012년 3월 30일
사양 · 208쪽 | 가격 9,000원 | ISBN 9788932022871